1935년 한글학회에서 발행한 「한글」에서 발표된 이광수의 글 “문학(文學)과 문사(文士)와 문장(文章)”을 오늘의 표현에 맞게 정리하였다. 원문의 내용에 충실하되 표현이나 문구는 오늘의 언어로 수정하였음을 밝혀둔다.
한 때 동경 3재(최남선, 홍명희, 이광수)라 불리며 조선의 근대문학을 이끌어 가던 3인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세계 2차대전 말 전쟁이 치열해 지자. 일본 제국주의의 지식인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3명은 각자의 길로 가게 된다. 이광수는 30년대 후반 무렵 일제의 강압에 못이겨 친일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나라 잃은 지식인의 나약함과 안타까움이 보여지는 모습이다. 아마도 이 글을 쓴 이후부터가 아닐 듯 싶다.
문사 중에는 인생의 애욕방면에 특별한 흥미를 가져서 남녀의 애정과 갈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짓기를 좋아하는 이가 많아서 이런 문사는 연애시인이니 연애소설가니 하는 명칭을 받습니다. 또 어떤 문사는 인생의 추악한 방면을 많이 폭로하기를 즐겨하고, 도 어떤 문사는 인생의 병적인 방면을 즐겨서 묘사하고, 또 어떤 문사는 인생의 야수적, 투쟁적 방면을, 도 어떤 문사는 인생의 괴기적 방면을 즐겨 묘사하여 탐기(耽奇)문학이니 정탐(偵探)문학이니 하는 것을 짓고, 또 어떤 문사는 인생의 유쾌한 방면, 가볍게 웃을 만한 방면을 잘 그려서 유머문학을 짓고, 또 어떤 문사는 인생의 포복절도할 골계(滑稽)적 방면에 흥미를 가져서 골계문학, 해학(諧謔)문학을 짓고, 또 어떤 문사는 사회문제를 취급하고, 또 어떤 문사는 인생의 실생활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세계를 공상으로 그리고, 또 어떤 문사는 문학의 형식을 빌어서 개인이나 사회를 풍자하거나 자기가 생각한 이론을 선전하는 이른바 선전문학, 주의문학이라는 것을 짓습니다. -본문 중에서
춘원 이광수
1892(고종 29)∼1950. 평안북도 정주 출생
문학가·언론인·친일반민족행위자.